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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3001



"나는 내 앞에 펼쳐진 장부의 새하얀 두 페이지를 새삼스럽게 들여다본다. 내가 신중하게 거기 써넣은 숫자들이 회사의 대차대조표를 이룬다. 나는 비밀스러운 미소와 함께 생각한다. 인생은 직물의 수납과 금액이 적혀 있는 출납 페이지와 같다고. 선을 그어 삭제하고 수정한 항목들과 직물의 명칭, 숫자 그리고 공란으로 이루어진 삶은 위대한 항해가, 위대한 성인,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위대한 시인의 인생까지도 포괄한다. 그들은 모두 회계장부와는 완전히 무관한 삶의 사람들이며, 세계의 값어치를 매기는 자들의 아득히 추방된 후손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직물의 명칭을 장부에 적어넣을 때, 내 눈에는 인더스 강과 사마르칸트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인더스도 사마르칸트도 아닌 제3의 장소, 페르시아의 4행시가 떠오른다. 4행시의 세 번째 행은 운율을 맞추지 않는다. 그것은 내 불안의 머나먼 지주다. 그러나 나는 장부에 숫자를 잘못 적어넣지는 않는다. 나는 쓰고, 합산한다. 부기는 계속된다. 이 사무실의 한 직원에 의해서,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완료된다."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pg.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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